어제 영태오빠 환송 피크닉에서 고기 배터지게 잘~먹고 잘~놀고 집에 와서도 남편이랑 수박 잘~먹고 고스톱 잘~치고 잘~자놓고는, 오늘은 아침부터 모든 게 지겹다는 생각이 들어 하루종일 아메바처럼 집에서만 꼬물대고 있다. 라면도 끓이기 싫을만큼 손도 까딱하기 싫어서 냉동감자로 밥을 때웠다 0_0 바빠서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아무 것도 하기가 싫다.
오늘 밤에 학교 가서 오피스 아워도 하고 시험문제 복사도 하고, 내일은 밤에 채점도 해야해서 낼 모레 미팅 준비를 미리 해두어야 하는데, 그냥 너무 지겨워서 계산만 돌려놓고 아무것도 안했다. 연구해야할 시간에 낮잠을 잤다. 잘 때는 너무 달콤했지만 일어나니 머리가 띵하고 여전히 아무것도 하기가 싫다. 이따가 학교는 어떻게 가나... 일단 밥하기가 싫어서 농구하러 간 남편한테 저녁으로 먹을 걸 좀 사오라고 했다.
갑자기 모든 게 지겨워져서 땅굴파고 겨울잠자러 들어가고 싶은 거, 하루 이틀 일도 아니지만 오늘은 너무 뜬금없고 정도도 심하다. 뭐가 그렇게 지겨울까. 앞으로 열흘 안에 반드시 해놓아야만 하는 여러가지 것들 때문에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는데 그게 폭발한 걸까. 교통사고 당하면 무조건 sue해야 한다고 맨날 목소리 높이던 사람이 막상 가해자가 되고나니 보험처리를 해줄까말까 하는 꼴을 보고 모멸감에 짜증이 난 걸까. 너무 여유가 넘쳐서 뭐든지 코앞에 닥쳐서 말해주는 남편 때문에 미리미리 일정을 꼬치꼬치 캐묻는 거를 10년째 하고 있는 게 갑자기 너무 구차해져서 그런 걸까. 그냥 정말 밥하는 게 지겨운 걸까. 채플힐이 지겨운 걸까. 4년차가 끝나가는 길고 긴 대학원 생활이 지겨운 걸까...
주변 유학생들 가운데, 너무 힘들어서 어느 날 집에 전화를 해서 울면서 당장 한국에 돌아가겠다고 했다거나, 엄마한테 여기 와달라고 했다거나, 남자친구한테 여기 와달라고 했다거나 하는 얘기를 종종 들어왔고 또 그래서 실제로 가족이나 남자친구가 무리해서라도 한국에서부터 날아와 도와주는 걸 종종 봤다. 난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한국에 있는 가족이 나에게 힘들다고 하는 일은 있었어도 나는 힘들다고 말해본 적이 없었다. 힘든 일이 있었어도 남자친구한테 전화로 얘기하고 말지 그렇다고 여기 와달라고 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 만약 오늘 같은 날 내가 결혼 안한 싱글이었더라면, 한국에 있는 친구든 남자친구든 전화로 당장 여기 와주면 안되겠냐고 했을 것 같다. 다행히 남편이 여기에 있다.
에효~ 밥먹고 기운차려서 학교에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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