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고 능력있는 사람이 되려고 무지 노력했었다. 공부 열심히해서 돈도 잘벌고 힘있는 사람이 되면 나 스스로를 지킬 수 있고 나를 자유롭게 하고 나를 배불리 먹이고 나를 편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게 너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렇게 되기 위해서 열심히 살았다.
막상 능력이 생겨서 편안한 삶을 살게 되니, 좋기는 좋은데 전혀 다른 이유로 좋다: 남편을 지키고 남편을 자유롭게 하고 남편을 배불리 먹이고 남편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어서 좋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남편에게 그렇게 해줄 수 있어서 정말 너무너무 좋다. 내가 남편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어서 정말 좋다.
남편은 테뉴어 트랙 교수이다보니 보스도 뭣도 없고 자유롭게 하고 싶은 공부 하면 되는 직업이라, 가끔 늦잠자고 싶거나 귀찮으면 출근을 안하기도 한다. 어느 날 아침 침대에서 뒹굴대다가 그 날도 학교를 안가겠다고 선언하면서, "내가 이렇게 게으름 피우고 맘 편하게 쉴 수 있는 이유가 뭔 줄 알아? 다 니가 능력있기 때문이야. 니가 집에 있는 전업 주부였으면 아무리 피곤해도 죽자사자 일어나서 학교 갔을 거야. " 진짜 자기가 학교에서 짤릴리는 없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 직장에서 짤려도 와이프가 벌어올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훨씬 마음이 편하다는 거였다.
난 남편이 나만 믿고 게으름을 피울 수 있다는 게 너무 좋다. 근심 걱정 귀찮은 일 다 떨쳐버리고 늦잠자다가 햇살 쏟아지는 침대에서 새소리 들으며 평화롭게 게으름을 만끽하고 있는 남편을 두고 출근할 때면 정말 내 마음이 푸근해지고 남편한테 이런 여유를 제공할 수 있는 나의 능력이 자랑스러워진다. 열심히 살길 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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