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1. 
"She's such a planner"라는 말 많이 듣는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 계획하는 거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한다. (계획을 잘 지키는 거랑은 별 상관없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너무너무너무 싫어하고 기본적으로 늘 불안해하는 성격이라 되도록이면 모든 걸 예측하고 내 통제 아래 두려는 내 나름의 방어기제인 듯하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나중에 뭘 먹고 살아야하나 걱정하고 계획을 세웠으니 남들보다 빨리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운 편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계획들을 다 지킨 것도 아니고 미래에 대한 내 예측이 틀린 것도 많고 그래서 지금 나는 중학교 때 내가 계획했던 것과는 아주 다르게 살고 있다. 그래도 상황의 변화에 따라 계획을 몇번 바꿨다 뿐이지 가까운 미래에 대한 계획들은 대부분 지켜왔고 특히 학부 때 박사 유학을 하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준비 기간까지 7~8년이 걸리는 장기 계획이었는데 다행히 무사히 완수하고 그렇게 딴 학위를 잘 써먹고 있으니 계획을 세우는 내 성격이 영 쓸데없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제 다시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고 어떻게 살지 뭘 하고 살지 계획을 해야할 시간이 되었다 - 곧 서른 살이 될 거고, 결혼한지 이제 막 5년이 되었고, 남편과 나의 커리어도 다음단계로 넘어가고 있고, 이제 곧 새로운 터전에 자리도 잡아야 한다. 여러모로 내 인생의 챕터가 넘어가는 순간이다.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사는 것도 삶의 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치만 늘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불안을 이겨내고 내 자신을 대비시키는 것이 나에게는 마음 편한 방법이고 여태까지 work했던 방법이니 이번에도 계획을 세워보려한다.

2.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려면 무엇을 고려해야하는가. 10대 20대 때는, '돈'이 가장 중요한 factor였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다. 돈을 많이 벌어서 펑펑 쓰고 싶다는 게 아니고 돈 때문에 구차하게 엮여서 내 자유를 빼앗기는 상황은 절대 맞기 싫다는 거다. 행복하려면 자유로워야하고, 자유로우려면 독립적이어야 하고, 독립적이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난 돈으로 독립적이고 자유롭고 행복한 사람이다. 그래서 내 주어진 조건이 이러이러한테 어떻게 해서 돈을 벌어서 잘살까 고민을 했었고 그 때 나에게 '잘 산다'는 건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기보다 잘할 수 있고 크게 싫지는 않은 일)을 하면서 떳떳하게 사는 젊고 멋있는 여성, 뭐 이런 개념이었던 것 같다. 그 때 '미래'라고 생각했던 건 기껏해야 내 30대까지의 삶? 40대가 되면 인생 끝나는 것처럼 아예 별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서른 문턱에 들어선 지금은 이제 더 길게 보게된다. 특히, 나는 인간의 평균수명이 늘어났다는 점을 사람들이 크게 간과하고 있고 나중에 늙은 다음에야 크게 땅을 치며 후회할 거라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때 별 생각없이 놀다가 대학가고 취업이 눈앞에 닥쳐서야 후회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처럼, 우리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면 미리 노후를 대비한 사람들과 당장 내일이 없는 것처럼 생각없이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이 많이 차이가 나고 여기저기서 후회하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이미 다들 80살까지 살고 있는데, 우리 때가 되면? 100살이 훌쩍 넘을 수도 있지만 환경오염을 완화해줄 에너지혁명이 우리세대에서 일어나지 않아서 대충 90살쯤 죽는다고 쳐도, 이게 어마어마하게 긴 노년기를 뜻하는 거다. 내가 60살에 은퇴를 해도, 은퇴이후 30년을 살아야 한다. 30년 벌어서 그 때 모아둔 돈으로 나머지 30년을 살아야 한다. 노인의 몸으로 몇십년을 살아야 한다. 직업이 없이 몇십년을 살아야한다. 아니면 늙어서도 할 수 있는 직업을 가져야 한다. 

어릴 때 생각 못했던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내가 결혼을 해서 혼자가 아니라는 점. 나는 남편이 있다. 내 행복 만큼이나 남편의 행복도 중요하다. 그리고 내 미래가 남편의 미래고 남편의 미래가 내 미래다. 

 3.
그래서 나의 계획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역시 재정계획이다. 남편과 열심히 계산해서 만든 이 계획은 물론 변수가 많다. 상황에 따라 모기지나 다 갚으면 다행인 인생이 될 수도 있고 훨씬 픽업해서 좋아질 수도 있다. 지금으로선 열심히 가계부쓰고 공부하면서 기회나 위기가 왔을 때 잘 대처하도록 대비해야한다. 일단 내년에 집을 사는 게 가장 큰 관문이 될 것이다.

그 다음 중요한 계획은 건강. 나는 남편이랑 오래오래 재미있게 살다가 코코 샤넬처럼 어느날 오후 산책하다가 피곤해서 집으로 돌아와 낮잠을 자다가 죽고 싶다. 그럴려면 아주 늙어서까지 건강해야한다. 60살부터 아프기 시작해도 죽기 전까지 30년을 앓다가 죽어야되는 것인데 생각만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건강하려면? 바르게 먹고 운동해야한다. 어떤 음식이 좋은 음식이냐 하는 건 늘 관심있게 배우고 있고 실천하고 있는데, 적게 먹는 것과 운동하는 걸 잘 못한다. 두달전부터 일주일에 5일이상 아침에 운동하는 걸 '노후대책 아침운동'이라고 이름붙인 건 나 스스로에게 길게 보고 미리 건강을 관리해야한다는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다. 늙어서 병원비에 전재산을 다 날리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늙어서도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서 운동을 해야한다.

그 다음은, 나와 남편의 커리어. 이건 재정계획과 긴밀한 연관이 있다. 몇십년 후에 테뉴어라는 제도에 변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어쨌든 남편은 테뉴어를 받으면 우리의 노후 생활에 큰 부담이 덜어지는 셈이다. 뭐 별일 없으면 테뉴어를 받을 거라고 생각하므로 남편의 커리어는 별로 걱정이 안된다. 남편은 테뉴어냐 아니냐가 아니라 사실 다른 레벨의 걱정을 해야하지... 어쨌든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나의 커리어는? 역시 별로 걱정되지는 않는데 그 이유는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워낙 수요가 많은 분야고 그 수요가 계속 늘어날 것이고 경험이 중요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별일 없으면 계속 지금처럼 일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치만, 경제적으로 지금보다 한단계 올라가려면 이렇게 안주하고 있으면 안된다. 연구를 해야하는데, 아~ 괴롭다. 난 그냥 여기서 만족하고 편하게 일하고 싶은데... 이러면 안된다는 각성이 들고 있다 요즘. 피츠버그는 여기 시카고보다 업무부담이 적을 것 같고 연구를 중요시하는 것 같았는데 거기가서 새로운 각오로 다시 연구를 좀 해보자는 계획을 세워본다.

다음으로 중요한 건, 내 취미 생활. 늙어서도 재미있게 살아야되니까. 그러나 이것들은 계획이 필요없을 만큼 좋아서 저절로 하는 것들이다. 그러니까 취미겠지. 이미 해보고 싶은 취미가 무진장 많으니 이건 별 계획이 필요 없다.

그리고, 나눔. 기부라고는 거의 해본 적이 없는 내가 시카고에 와서 배운 것들 중의 하나가 기부문화다. 기부의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연스럽게 기부하고 때때로는 기부할 기회를 찾아다니면서 기부하는 동료들을 보며 이질감이 들기도 했다. 가족이나 친구들한테는 간 쓸개 다 내주면서 모르는 사람한테는 완전 무관심한 한국 문화 때문인가, 한푼이라도 아껴쓰던 대학원생의 마인드가 아직도 남아있어서인가, 아니면 그냥 이기적인 내 성격 때문인가. 그래도 자꾸 봐서 이제 좀 익숙해진 것 같은데, 이제부터는 조금씩 실천을 해보려고 한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작은 액수로 시작을 해봐야겠다. 그래야 내가 나중에 여유있는 사람이 되었을 때, 아니면 혹시라도 부자가 되었을 때, 내가 세상에 만들고 싶었던 변화를 만들기 위해 과감히 큰 돈을 기부하는 게 자연스럽게 될 것이다.

4.
자잘한 계획들을 세워두면 사소한 걱정들이 덜어져서 큰 그림을 보고 진짜 중요한 것들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내가 이런 거 저런 거 걱정하고 준비하는 것들, 따지고 보면 그렇게 중요한 일은 별로 없다. 세상에 진짜로 중요한 일들은 정말 거의 없다. 나한테 진짜로 제일 중요한 건, 남편이다. 남편이랑 사랑하고 행복한 게 제일 중요하다. 그래서 난 남편한테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정말 최선을 다해 잘해 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