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1박 2일 단풍로드 특집의 saturation 만빵인 화면들을 보고 inspired된 남편이 보정한 사진들이다 ㅎ 인클라인타고 올라가서 찍은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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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을 옮긴지 3달이 지났다. 이제 정말 뭔가 자리가 잡혀가는 듯하고 익숙해지고 있지만 아직도 매일매일 새로 배우는 게 엄청 많다. 아마 직업 특성상 은퇴 직전까지 늘 새로운 걸 배워야하긴 할 거다.
여기선 시카고에서와는 다르게 아직도 큰 보스, 작은 보스, 다른 시니어 패컬티들이 일이 어떠냐, 할만 하냐, 불편한 점은 없냐 수시로 왔다갔다 마주치면서 체크하고 정기적으로 일대일 미팅이나 점심까지 해서 내가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확인한다. 너무 자주, 너무 많은 사람들이 수시로 내가 '기분이 좋은지' 확인을 하기 때문에 매번 어떻게 대답을 해야할지 궁색한 지경에 이르렀다. 맨날 "great, good, going well" 똑같이 내용없는 (아니, 내용없어 보이지만 진심인) 대답만 할 수도 없고. 어제 Doug (작은 보스)랑 미팅하면서 또 같은 질문을 하길래 아 뭔가 organize된 대답을 준비하고 있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일을 어떻게 하고 있나... 얼마나 즐기고 있나... 시카고에서도, 딱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재밌게 할 수 있는 일로 뭔가 눈에 보이는, 남들이 필요로하는 성과를 낸다는 게 너무 좋아서, 내 5년간의 공부가 원래 생각한 방향은 아니었지만 나한테 딱 맞는 능력을 갖추게 해줬다는 거에 정말 감사했었다. 그리고 보스와 동료들이 너무 좋고 특히 내 베스트프랜드 중 하나가 되어버린 마샤와 헤어지기 싫어서 다른 곳으로 옮기기 정말 싫었는데, 어쩌다 옮기게 된 이 곳이 시카고보다 더 좋다니. 정말 사람 일은 예측을 할 수 없는 거다.
시카고도 좋았지만 일이 너무 많고 보스가 너무 착한 사람이다보니 통계학자들의 편의를 잘 대변해주지 못했었다. 그래서 거지같은 오피스에서 오버타임으로 일해야했고, 말도 안되는 요구를 하는 PI들에게 강하게 맞서지 못하고 끌려다녀야했었다. 그런데 여기 보스는 비지니스를 너무 잘하는 사람 - 모든 사람이 좋아하면서도 존중하고, 필요할 땐 우리 입장을 강하게 대변하고 늘 우리의 이익을 보호해준다. 이게 내 일에 이렇게 큰 영향을 끼치게 될 줄은 몰랐다. 시카고에선 아무리 바빠도 들어오는 요청은 다 받아주고 특히 그랜트 프로포절 도와주는 건 공짜이다보니 너무 많이 들어와서 바빴는데, 여기에선 통계학자 한명당 한 사이클에 그랜트 프로포절 두개가 맥시멈이고 그 이상으로 돌아오는 건 거절한다! 거절! 진짜로 사람을 돌려보내는 걸 목격했다! 테드 같았으면 상상도 못할 일. 그리고 이상한 PI는 어디에나 있기 마련인데, 시카고에선 우리끼리 블랙리스트 만들고 막 우리끼리 욕하고 어쩌고 해도 일이 들어오면 그냥 참고 해야했는데, 여기에선 아니다. 최근에 어떤 PI가 나한테 불평을 했는데 나로서는 어이없고 억울한 불평이라 작은 보스한테 살짝 얘기했더니, 그게 바로 큰 보스 귀에 들어가고 지령이 왔다. 그 사람이랑 굳이 참으면서 일할 필요 없고 언제든지 관계를 끊어버려도 되니까 걱정말고 내 마음대로 하라고. 아... 시카고에선 상상도 못할 일...
또 시카고에서는 PI들에게 데이터 매니지먼트를 위해 돈을 쓰라고 강요를 하지 못했었다. 데이터를 엉망으로 모으면 결국 나중에 그거 클리닝하느라 고생하는 건 통계학자이기 때문에 우리 입장에선 아주 중요한데, PI들은 그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으니까 거기에 돈을 안쓰고 사실 돈을 쓰고 싶어도 방법을 모른다. 맨날 이 문제 때문에 마샤랑 필이랑 테드랑 피터지게 토론하고 늘 결론은 안났었다. 그런데 여기엔 데이터 매니지먼트 전문가들이 우리 그룹에 있다. 그래서 PI들에게 데이터 매니저 월급으로 얼마를 배정하라고 강요하고 그 매니저가 데이터 베이스를 셋업하게 한다. 그럼 나중에 깨끗한 데이터가 나오니까 우리가 훨씬 편해진다. 물론 여기 PI들도 필요성을 모르는 건 마찬가지인데, 우리 보스가 "그렇게 제대로된 DB에서 나온 데이터가 아니면, 아무리 작은 데이터라도, 심지어 20줄짜리 간단한 데이터라고, 손으로 엑셀에 입력한 데이터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강력하게 policy를 밀어부치고 있기 때문에, 통계학자 입장에서는 "그것이 우리 방침이므로 니가 DB 셋업에 돈을 배정하지 않는다면 난 이 그랜트 일을 할 수가 없다. 이해안되면 우리 보스한테 말해봐라" 이렇게만 말하면 되니까 아주 편하다. 게다가 우리 보스는 모든 사람이 다 아는 힘있는 사람이라서, 뭐 그냥 게임 끝이다.
아무튼 이런 차이점들 덕분에 여기에서 일하는 게 훨씬 편하고 더 rewarding하고 더 기분 좋다. 그치만 그 말은 반대로 이런 새로운 aspect를 배우고 익숙해져야한다는 새로운 challenge가 있다는 말도 된다. (아 이 번역체 짜증나지만 한글로 글을 쓴지 오래되다보니 자꾸 영어로 생각난다 -_-) 데이터 매니지먼트를 위해 budget을 allocate하시오, 라고 PI한테 강요를 하려면, 그게 정확히 어떤 일들을 involve하는지 내 자신이 먼저 확실히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요즘 며칠 동안 데이터 매니지먼트에 대해 여기저기 물어가며 많이 배웠다... 옛날에 마샤나 테드 사이에 오갔던 대화내용이 더 잘 이해가 되고 있다... 이게 보통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무튼 그래서 엄청 많이 배웠고 갑자기 clinical trial의 전문가가 된 느낌이다.
근데 대부분 PI들이 나보다 15살-30살 더 많다. 5~10살쯤 더 많은 사람들도 있는데 그들은 대부분 나와 대등한 관계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그들의 career development program의 biostat educator로, 그들은 trainee로서 나에게 도움을 받는다. 그러다보니 나이에 따라 관계 및 언어가 결정되는 한국에서 온 나로서는 안그러려고 노력해도 영 이상한 상황들의 연속이다. 나보다 20살 많은, 즉 거의 부모님 뻘인 의사들, 내가 태어날 때쯤 학부를 졸업했던데, 그런 사람들이 나처럼 새파랗게 어린, 영어도 버벅대는 여자애가, 자기들이 보기엔 필요 없는 일에 돈을 쓰라고 강요하고, 자기들의 스터디 디자인을 막 뜯어고치려고 하고, 자기들의 hypothesis를 뒷받침하는 데이터가 약하다는 걸, research question이 불분명하다는 걸 자꾸 지적질하고 그러면 어떤 기분일까. 한국에서였으면 정말 불편한 관계일텐데 여기에선 아직까지 그런 기미 없이 다들 완전 프로페셔널하게 나를 equal로서 존중해준다.
쓰다보니 넘 길어졌네... 그만...
암튼 요지는, 여기서 일하는 게 너무 좋다는 거 ㅋ 그리고 배울 게 너무너무 많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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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친구들이 job apply할 시즌이 다가오고 있다. 올해와 내년, 피츠버그로 지원할 사람들, 정말정말정말 다 오퍼 받아서 여기 왔으면 좋겠다. 여기 모여살면서 옛날 베이티힐에서처럼 같이 맛있는 거 해먹고, 가끔씩 미친듯 술마시고 ㅋㅋㅋ, 커피마시면서 수다떨고 명절에 떡해먹고 만두 빚어먹고 그럼 얼마나 좋을까. 저번에 이하나한테도 얘기했는데 만약 진짜 가족같은 이사람들이 다 붙어서 피츠버그에 온다면, 나는 하나님을 믿을 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하나님이 없다면 내 인생이 후반에 이렇게 잘풀리는 걸 설명할 수가 없으니까.
다들, 굿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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