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장'에 해당되는 글 323

  1. 2009.05.18 Back to Chapel Hill
  2. 2009.05.16 여기는 조지아 7
  3. 2009.05.14 경진이랑 점심
  4. 2009.05.12 오랜만에 극장 4
  5. 2009.05.10 주현오빠 방문
  6. 2009.05.08 긴 하루
  7. 2009.05.07 즐거운 쇼핑
  8. 2009.05.05 시험감독 중 2
  9. 2009.05.04 우울 4
  10. 2009.05.02 5월 시작

Back to Chapel Hill



드디어 돌아왔다. 이틀짜리 작은 학회인데도 이렇게 힘들다니. 아침 일찍부터 일정이 시작되어서 잠이 모자란다. 그래도 오늘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서 애틀란타 구경을 잠깐 하고 정연언니가 강력 추천한 한국 식당에도 갔다왔다. 애틀란타에선 비도오고 피곤해서 마틴 루터 킹 주니어 기념관이랑 그 주변을 보고 왔는데 별 생각없이 갔다가 약간 감명을 받고 왔다.

어쨌든 배운 게 참 많은 학회였다. 학회에서 듣게 되는 talk 자체보다도, 거기에서 사람들과 친해지고 얘기하고 그런 것에서 정말 많은 걸 배웠다. 어제 저녁에도 정연언니 철우오빠네 집에 또 가서 다른 통계과 선배도 만나고 주니어 교수 생활에 대한 얘기와 한국 통계 학계 뒷얘기 등등을 들으며 정말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거기에서 딱히 친한 사람도 챙겨주는 사람도 없어서 우리만 졸졸 따라다니는 Xingye를 호텔에 버려두고 자꾸 우리끼리만 한국 사람들이랑 저녁먹으러 나가는 게 미안해서, 밤에는 Xingye랑 같이 Bar에 가서 맥주를 마셨다.... 이런 저런 사람들이 잘나가고 못나가고 하는 얘기를 들으니 networking이나 communication을 잘하고 못하고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정말 피부로 깨닫게 되었다. 원래도 알고 있긴 했지만, 정말 그런 실력 외적인 요소가 한 사람의 커리어를 완전히 망쳐버릴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어 약간 두려운 마음도 들고 나도 그런 것에 능한 편이 아닌데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주니어 교수들을 보니까 (그 학회에 대학원생은 거의 없는 것 같았다) 졸업을 1년 앞둔 job applicant로서의 내가 자꾸만 객관적으로 보여서 약간 괴로웠다. publication도 너무 약한 것 같고 경험도 부족하고 영어도... 솔직히 영어로 presentation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일찍부터 깨닫고 잘하려고 많이 노력해왔던 것이었는데, 이번 학회에서 정연언니의 talk을 듣고 한마디로 입이 딱 벌어지게 놀라서 난 아직 멀었구나 노력을 정말 한참 더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빡센 일정을 끝내고 돌아오니 집이 제일 좋다. 3일 안에 모든 걸 정리하고 짐도 싸고, 그 이후에 이어질 바쁜 일정을 생각하면 지금 숨이 탁탁 막혀온다. 게다가 지금 연구가 진척이 느려서 더 큰일이다. 일단 오늘은 일찍 자고 내일부터 부지런히 할 일을 해야겠다.

  

여기는 조지아



어제 차로 열심히 달려서 조지아에 왔다. 멀다 -_- 전에 어떻게 플로리다까지 운전을 했지??? 12시에 출발해서 저녁 6시 반쯤 도착했다. 여기 UGA 통계학과 교수부부인 정연언니 철우오빠네 집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집이 너~무 크고 너~무 이뻤는데 세상에 또 사진을 안찍었다-_- 내가 나중에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규모보다 살짝 큰 집이어서 놀랐다. 부부 둘다 교수해도 이런 집을 살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조지아가 원래 집 값이 싼 편이긴 하다.

오늘 학회에 8시까지 가야돼서 새벽같이 일어났더니 정말 피곤하다. 내 리서치랑 관계가 별로 없는 학회라서 talk이 재미가 없지만 처음으로 와보는 학회라 분위기도 엿보고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알게 되어서 나름 힘들게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다. 사실 제일 큰 보람은 어제 정연언니 철우오빠 명희언니랑 얘기하면서 교수가 된 다음의 삶과 리서치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듣고 두려움을 약간 떨쳐버렸다는 데에 있다. 교수를 하고 싶은 마음이 살짝 커졌는데 이제 문제는 경기가 너무 안 좋아서 job market이 엉망이라는 거다. 이건 일단 나중에 걱정하기로 하고...

공부할 게 많아서 나는 일단 먼저 숙소로 와서 공부하는 중이다. 이 학교도 UNC처럼 평일 낮에 주차가 안되어서 걸어다녔더니 좀 피곤하다. 저녁 때는 차 몰고 가서 Banquet을 먹어야겠다. 이 학회는 식사가 다 제공되는 학회라서 참 좋다^^ 나는 아무생각없이 등록도 안하고 덜렁덜렁 남편따라왔는데 insider를 알고 있으니 어떻게 해결이 되어서 공짜로 밥을 얻어먹고 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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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소식: 내가 여름에 인턴쉽하기로 한 코네티컷에 있는 제약회사에서 갑자기 급하게 인턴을 하나 더 채용한다는 걸 내 지도교수가 알려줘서, 남편이 지원해서 accept되었다. 부부가 같은 회사에서 인턴을 하게 되다니 이런 상황은 꿈도 꾸지 못했고 정말로 두달 반 동안 떨어져 살 마음의 준비를 힘들게 힘들게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되는 바람에 모든 상황이 좋아졌다. 둘이 떨어져있지 않아도 된다는 게 제일 좋고, 요즘처럼 인턴쉽 구하기 힘든 때에 가만히 있다 인턴쉽이 굴러들어온 남편은 정말 운이 좋은 거 같다. 게다가 일 자체도 연구와 관련이 있어서 경력에 도움이 될 것 같다. Yufeng은 내 은인이고, 아니 우리 부부의 은인이고, 나랑 남편은 하늘이 도와주는 인연이다 ㅎㅎ

경진이랑 점심


올해 1월 1일이후 처음 만나는 경진이랑 구글호프에 가서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경진이는 이 곳에 있는 대학원 유학생 중 나보다 어린 몇 안되는 사람 중 하나다. 내 동생이랑 같은 대학 같은 학번인데다 키 큰 것도 닮았고 잘 들어보면 말투도 닮았다. 저번 Topsail 여행 때 몇가지 관심사가 같은 걸 알게 되어 친하게 지내야지... 마음만 먹고 또 내 성격대로 한학기 내내 연락도 한번 안하고 살다가, 문득 '아 이러면 안되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연락해서 만나게 되었다 ㅋ 정연언니가 소개시켜 준 아이라 그런지, 꼭 정연언니가 나한테 잘해줬던 것처럼 나도 경진이한테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정말 나이도 딱 두살 씩 차이나고... 물론 내가 정연언니처럼 좋은 선배가 될 material은 아닌 것 같지만...

아무튼 오랜만에 만나는 건데도 할 말도 많고 재미있었다. 야외에 앉아서 밥을 먹으니 너무 이쁘고 날씨도 좋았는데 사진 찍어야지 마음만 먹고 또 잊어버리고 말았다 0_0 내일 조지아 가서는 사진 좀 찍어야겠다. 잊어버리지 말아야지 진짜...


내일 조지아에 가려고 짐을 싸고 있다. 드디어 5월의 빡센 여행이 시작된다. 근데 학회에 갈 때 도대체 옷을 어떻게 입어야될지 모르겠다. 정장 입을 필요는 없는데 그렇다고 내가 평소에 입던대로 핫팬츠나 미니스커트를 입으면 안될 것 같다.긴 청바지는 더울 것 같고. 무릎까지 오는 면 소재 치마들은 입어보니 간호사 같기도 하고 너무 촌스럽다. 롱스커트를 입고가도 웃길 것 같다. 펜슬스커트를 입으면 촌스럽지는 않은데 내가 발표자도 아니면서 너무 드레스업한 것처럼 보일 것 같다. 아 대체 뭘 입어야되는지... 내 옷 중에 semi-formal에 치마나 바지가 없다는 게 문제인 것 같다. 이번에 회사를 다니게 되면 그런 옷을 좀 사게 되려나.


며칠 전에 우연히 내가 짠 R 코드를 들여다보다가 틀린 점을 발견했다. 일주일 내내 돌려야 되는 계산을 다시 해야할 것 같다. 안그래도 할 일 많은데 내 '실수' 때문에 일이 늘어났다는 생각에 짜증이 났었는데 결국 그냥 받아들이고 다시 하고 있다. 회사를 가기 전에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시부모님이 여기 계신 동안에도 미팅을 한 번 해야할 거 같다-_- 회사에선 내 백그라운드 첵이 너무 오래 걸려서 지금 사실 인턴쉽이 6월 1일에 예정대로 시작될 수 있는지도 미지수다. 문제가 있는 게 아니고 단지 오래 걸리고 있을 뿐이니 안심하고 hang in there하라고 assure하는 전화를 오늘 받았다. 아 정말 미국 사람들은 왜 이렇게 비효율적이고 느릴까...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잘 사는 걸까.


얼른 짐 마저 싸고 빨래 개고 설거지 하고 자야겠다.

 

오랜만에 극장


오늘 밤엔 정말 오랜만에 도미닉이랑 에릭이랑 극장에 가서 스타 트랙을 봤다. 원래 남편은 엑스맨을 보고 싶어 했었는데 도미닉이 스타 트랙을 보자고 하여 남편이 "엑스맨 볼래 스타 트랙 볼래?" 이러길래 "그건 오빠한테 섹스 앤더 시티 볼래 앨리 맥빌 볼래? 라고 묻는 거랑 마찬가지야"라고 해줬다 ㅎㅎ 어쨌든 인기가 훨씬 더 많은 스타 트랙을 봤는데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남편 말대로 Science Fiction치고 별로 유치하지 않았다는 것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something amazing is about to happen! We were being excited all day about this. I don't want to jinx it, but it seems to be very likely to be happening. I wish we will hear something tomorrow so that we can celebrate!!

 

주현오빠 방문

1.
어제는 여기서 biostat을 졸업하고 지금은 DC에서 일하고 있는 주현오빠가 내려왔다고 해서 저녁 때 사람들이 모였었다. 술 다마시고 11시쯤 일어났는데 그 때 갑자기 남자들이 농구를 하러간다고 해서 여자들은 우리집에 와서 수다떨고 놀았다. 남자들도 농구다 하고 다 우리집에 몰려와서 새벽 2시까지 놀았다 0_0 집이 완전 난장판인 상태에서 예고도 없이 사람들이 와서 좀 민망했지만 ㅋㅋ 재밌었다 ㅎㅎ

JSM가면 주현오빠랑 삼겹살 구워먹기로 했다 ㅎ 코리아타운 가까이에 살아서 삼겹살도 자주 먹고 한국 식당도 자주간다는 얘기를 들으니 부러웠다. 여기 채플힐은 다 좋은데 코리아타운이 조금만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2.
블로그를 시작한 이유 중 하나가 사진 때문이었는데 정작 사진을 별로 안찍고 있다. 요즘 날씨도 좋은데 부지런히 찍어야겠다. 싸이와는 달리 모든 방문자에게 사진이 보이는데 인물 사진을 올려도 괜찮은가 하는 문제가 있었는데 방문자수나 유입경로를 보니 괜찮은 것 같다. 아무런 홍보활동도 발행도 하지 않고 지금처럼 개인 홈페이지처럼 운영하는 방식을 앞으로도 계속 유지할 것 같다.




긴 하루


오늘 아침엔 백만년만에 밖에서 뛰었다...기보다는 걸었다. 학교엔 정말 가기 귀찮았는데 마지막 오피스 아워를 하러 갔는데 역시 애들은 하나도 안왔다. 앉은 김에 8월에 가야될 JSM(Joint Statistical Meeting - 매년 열리는 통계관련 가장 큰 학회)를 위해 호텔 예약을 하려다가 불과 며칠 새에 엄청 오른 호텔비를 보고 깜짝 놀라버렸다. 완전 열받아서 분노의 검색질로 열심히 호텔을 찾았는데 정말 DC는 호텔이 너무너무너무 비싸다. 아침 8시 반에 내가 chair를 하는 세션이 있어서 교통이 불편하거나 먼 곳을 제외하니 정말 가격이 100불을 안넘는 호텔은 찾을 수가 없었다...
 
간신히 지하철역 가까운 호텔 중 그 중 괜찮은 가격으로 나온 딜을 찾아서 예약을 했는데, 호텔이 이렇게 비싸니 비행기표랑 등록비랑 다 하면 꽤 큰 금액이다. Travel Award 안받았으면 어쩔뻔 했나 싶다. 정말 돈없는 대학원생들은 학회 참석비 지원해줘야된다-_-

저녁 때는 르베카네 집에 갔다. 나는 여름에 코네티컷에 가고, 얘는 유럽에 가기 전 마지막으로 만난 거였다. 스펜서 사촌의 결혼식에 입고갈 드레스에 맞춰서 구두랑 가디건을 골라줬는데 예비 시댁식구들 만날 생각에 엄청 신경쓰고 스트레스 받아하는 걸 보니 그런 건 한국이나 미국이나 참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올 여름엔 사람들이 한국에도 많이 가고, 여기저기 많이 떠난다. 나도 엄청 바쁘게 여기저기 다녀야된다. 약간... 유학오기 직전의 걱정되고 불안하면서도 궁금하고 설레는 느낌이다. 올 여름에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고 내 미래가 어떻게 될까.


즐거운 쇼핑

1.
어제는 여행용 Carry-On 가방을 사러 마샬에 갔다. 이미 싼 걸로 샀다가 망가뜨린 경험이 두번이나 있기 때문에 좋은 걸로 사야겠다고 마음먹고 갔는데도, 막상 좋은 가방을 보니 가격 때문에 망설여져서 또 한번 싼 걸 사느냐 이번에 눈딱감고 비싼 걸 사서 오래 쓰느냐 한참 망설이다가 결국 티제이맥스까지 갔다 다시 되돌아 와서 좋은 놈으로 샀다 ㅎㅎ 160불짜리를 80불에 팔고있는 샘소나이트였는데, 다른 싼 가방들에 비해서 훨씬 가볍고 튼튼하고 마감이나 수납 공간이 훨씬 좋고, 무엇보다도 바퀴가 네 개에다가 핸들링도 아주 좋다.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리면서 놀았다 ㅎㅎ 미국 유학 처음 올 때 산 2만 얼마짜리 가방이 2년 반 만에 망가졌으니, 요 가방으로 10년 쓰면 남는 장사다. 10년 넘게 오래오래 써야지 ㅋ 일단 이번 여름에 해야할 수많은 여행에 열심히 끌고 다녀야겠다 ㅎ

바퀴 네 개짜리 가방은 유럽여행갈 때 아주 좋다더라...는 말을 옛날에 유럽여행 사이트에서 읽은 기억이 나서 와 그럼 이거 유럽갈 때 가져가야겠다...로 시작되어 유럽여행을 언제 갈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을 해봤다. 그런데 결론은 갈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ㅠㅠ 돈은 학생 때 돈 모으는 거 포기하고 있는 돈 탈탈 털면 갈 수 있을 거 같은데, 이번 겨울은 보드 타러 다녀야 되고, 내년 여름은 내가 졸업을 해버려서 비자 문제 때문에 미국 밖에 나갈 수가 없다. 그 다음해 여름은 남편 비자가 문제일 거고, 그 다음해부터는 둘다 full-time으로 일을 하면 한달씩 휴가를 못내지 않을까. 애라도 낳으면 더더욱 유럽은 불가능한 얘기가 되어버린다.

결혼하고 나서 잘했다고 생각한 것 중에 하나가 우리가 버는 쥐꼬리만한 돈을 최대한으로 활용해서 여행을 많이 다녔다는 것인데, 유럽으로 장기간 여행을 다녀오지 못하고 졸업을 해야하는 것은 정말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2.
아무래도 지도교수가 tenure가 되었다는 사실이 나에게 impact가 컸던 것 같다. 교수가 너무 좋아보인다... 30대 중반에 종신고용이 보장되면 얼마나 마음이 편할까. 더더구나 나처럼 앞일을 먼저 걱정하는 게 취미인 사람한테는...

게다가 요즘은 평균수명이 길어져서 50대에 은퇴해버리면 30년이나 그 이상을 보장된 수입없이 살아야 한다는 게 갑자기 큰 문제로 보인다. 나는 계획대로라면 만 28세에 졸업을 하고 그제서야 제대로 돈을 벌기 시작할 거다. 그럼 25~30년이 안되는 기간 동안 번 돈으로 60년을 살아야 하는 거다. 늙어서도 계속 일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늙어서 일하기에 학교 교수보다 좋은 건 뭘까????? 우리 과에 쭈그렁 할아버지 교수님 Leadbetter는 정말 볼 때마다 왜 은퇴안할까 싶을 정도로 너무 (늙어서) 힘들어보이는데, 그 사람의 연봉을 듣고 깜짝 놀라고 왜 은퇴를 안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렇게 늙어서도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건 정말 생각만 해도 든든하다.

어차피 길게 사는 인생, 결국 끝에서 좋은 게 좋은 거 아닐까? 회사다니면 젊어서 반짝 좋겠지만, 가늘고 길게 교수로 오래오래 버는 것도 좋을 거 같다... 물론 tenure 될 때까지가 엄청 힘들고 tenure된다는 보장도 없다는 걸 감안하면 역시 risky choice지만...

시험감독 중

기말고사 감독하는 중이다. 50분짜리 시험 감독은 금방 끝나는데 이건 2시간짜리라 좀 지겨워서 아예 랩탑을 켜놓고 이것저것 하고 있다. 시험은 6시에 끝나는데 learning disability있는 애가 있어서 한 8~9시까지 기다려줘야할 것 같다. 오늘 밤에 채점 싹 끝내고 내일 학점 확정해버려야겠다.

어제 extra office hour에는 딱 두명이 왔다. 공부 젤 잘하는 애랑, 공부 젤 열심히 하는 애. 매번 느끼는 거지만 또 느꼈다. 공부에 있어선 개인의 지능과 의지를 넘어서는 게 없다는 걸. 공부 젤 잘하는 애는 이미 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별로 도움이 필요없는데도 sampling distribution의 뜻을 확실히 알기 위해서 왔다. 공부 젤 열심히 하는 애는 두번째 중간고사 때 이미 기적과도 같은 점수 상승을 보여주었고 어제 공부 해온 걸 보니 너무 꼼꼼하게 공부를 해 놓아서 이번에도 시험을 잘 보고 무사히 A-나 B+정도를 받을 것 같다. 사실 오피스 아워 등을 통해 별도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애들은 하나도 안오고 도움이 필요없는 애들만 온 것이다. 이렇게 스스로 도움을 찾아다니는 애들은 그 도움 없이도 혼자서 잘한다. 도움이 필요한 애들은 스스로 도움을 찾아다닐 의지가 없다.

학교에서 나같은 선생님이 아무리 열의를 가지고 가르쳐도, 그걸 받아들일 지능과 열성이 없는 애들은, 못받아들인다. 교실에서 별로 강의 내용에 관심없거나, 몰라도 이해하는 척 하고 앉아있는 애들을 붙들고 "너 이거 사실 잘 모르겠지? 이따 내 오피스로 와서 설명 다시 들어"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교육도 마찬가지다. 과외할 때 아무리 내가 이 한문제를 이해시키려고 애를 써도 본인이 그 문제를 읽고 생각할 의지가 없으면 2시간을 꼬박 한문제를 놓고 앉아있어도 이 아이는 그 문제가 묻는 바가 뭔지 끝까지 모른다. 정말 '생각' 자체가 하기 싫은 아이들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결국 개인의 학문적 성취는 결국 그 개인에 달려있다. 외부의 도움이 만들 수 있는 difference는 정말 0에 가깝다. 이 자명한 사실을 왜 받아들이지 못할까? 포탈 사이트들에는 아직도 "공부 잘하는 머리가 정말 있나요?" 등의 놀라운 질문이 올라오고 "공부는 머리가 아니라 노력이다. 공부 잘하는 애들은 집에서 밤샌다"는 더 놀라운 댓글이 수두룩하게 올라온다. 왜 진실을 외면할까? 운동신경, 음악적 재능, 미적 감각 등의 존재는 인정하면서 왜 공부는 머리가 아니라 돈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우울


어제 영태오빠 환송 피크닉에서 고기 배터지게 잘~먹고 잘~놀고 집에 와서도 남편이랑 수박 잘~먹고 고스톱 잘~치고 잘~자놓고는, 오늘은 아침부터 모든 게 지겹다는 생각이 들어 하루종일 아메바처럼 집에서만 꼬물대고 있다. 라면도 끓이기 싫을만큼 손도 까딱하기 싫어서 냉동감자로 밥을 때웠다 0_0 바빠서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아무 것도 하기가 싫다.

오늘 밤에 학교 가서 오피스 아워도 하고 시험문제 복사도 하고, 내일은 밤에 채점도 해야해서 낼 모레 미팅 준비를 미리 해두어야 하는데, 그냥 너무 지겨워서 계산만 돌려놓고 아무것도 안했다. 연구해야할 시간에 낮잠을 잤다. 잘 때는 너무 달콤했지만 일어나니 머리가 띵하고 여전히 아무것도 하기가 싫다. 이따가 학교는 어떻게 가나... 일단 밥하기가 싫어서 농구하러 간 남편한테 저녁으로 먹을 걸 좀 사오라고 했다. 

갑자기 모든 게 지겨워져서 땅굴파고 겨울잠자러 들어가고 싶은 거, 하루 이틀 일도 아니지만 오늘은 너무 뜬금없고 정도도 심하다. 뭐가 그렇게 지겨울까. 앞으로 열흘 안에 반드시 해놓아야만 하는 여러가지 것들 때문에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는데 그게 폭발한 걸까. 교통사고 당하면 무조건 sue해야 한다고 맨날 목소리 높이던 사람이 막상 가해자가 되고나니 보험처리를 해줄까말까 하는 꼴을 보고 모멸감에 짜증이 난 걸까. 너무 여유가 넘쳐서 뭐든지 코앞에 닥쳐서 말해주는 남편 때문에 미리미리 일정을 꼬치꼬치 캐묻는 거를 10년째 하고 있는 게 갑자기 너무 구차해져서 그런 걸까. 그냥 정말 밥하는 게 지겨운 걸까. 채플힐이 지겨운 걸까. 4년차가 끝나가는 길고 긴 대학원 생활이 지겨운 걸까...

주변 유학생들 가운데, 너무 힘들어서 어느 날 집에 전화를 해서 울면서 당장 한국에 돌아가겠다고 했다거나, 엄마한테 여기 와달라고 했다거나, 남자친구한테 여기 와달라고 했다거나 하는 얘기를 종종 들어왔고 또 그래서 실제로 가족이나 남자친구가 무리해서라도 한국에서부터 날아와 도와주는 걸 종종 봤다. 난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한국에 있는 가족이 나에게 힘들다고 하는 일은 있었어도 나는 힘들다고 말해본 적이 없었다. 힘든 일이 있었어도 남자친구한테 전화로 얘기하고 말지 그렇다고 여기 와달라고 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 만약 오늘 같은 날 내가 결혼 안한 싱글이었더라면, 한국에 있는 친구든 남자친구든 전화로 당장 여기 와주면 안되겠냐고 했을 것 같다. 다행히 남편이 여기에 있다.

에효~ 밥먹고 기운차려서 학교에 가야겠다.



  

5월 시작

벌써 5월이다...

1.
처음으로 officially accept된 내 페이퍼를 저널 포맷에 맞게 바꾸는 작업을 했다. 그것 때문에 MikTex을 새로 깔고 난리난리치느라 머리에서 김이 났다. 남편이 도와줘서 그래도 빨리 했는데, 사실 이럴 때마다 이런 정답없는 상황을 해결하는 능력이 남편에 비해 떨어진다는 걸 깨닫는다. 회사 다니면 무슨 일 있을 때마다 남편한테 쪼르르 달려갈 수가 없는데 나 혼자 일을 잘 할 수 있을까?  

아무튼 이 작업은 별로 유쾌하지가 않았다. 별로 유명한 저널이 아니라서 그렇게 기쁘지도 않고 오히려 귀찮은 일만 생겼다는 느낌이다. 연구가 아닌 이런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기술적인 문제들로 시간과 노력을 쓰는 거 너무 아깝다.

2.
지도교수가 tenure가 되었다. 처음 지도교수 정할 때 이 사람이 너무 젊어서 이 사람이 중간에 이 학교를 떠나면 어쩌나하는 걱정을 안한 것은 아니었는데 이제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어졌다. (사실 뛰어난 사람이라 별로 걱정은 안했었다.)

3.
저녁 때 카레를 한 냄비를 끓였다. 내일 점심까지는 해결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남편이 야식으로 다 먹어버렸다. 요즘은 무슨 요리든 두번 먹을 수 있게 4인분을 생각하고 만들어도 한끼에 끝나버린다. 내가 전업주부도 아니고 하루 세끼를 다 요리를 할 수는 없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하루에 한번만 제대로 요리하고 나머지는 남은 것들과 밑반찬들로 간단하게 먹으려고 하는 편인데 요즘은 그게 잘 안된다. 좀더 큰 냄비를 사야할 것 같다. 국이나 찌개가 한번에 다 끝나버리지 않게...

뭐 그래도 잘먹는 남편을 보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ㅎㅎ